| |||||
|
| |||||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마태복음 14:22-33)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눈으로 본다면 사람이 바다 위를 걸었다는 이야기는 뻔할 뻔 자, 거짓말입니다. 이런 뻔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성경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 합리적인 이유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부렁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며 불가능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알고 계십니다.
이미 날이 저물어 어두워졌고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한 가운데서 거센 바람을 만나 침몰 직전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무도 제자들의 고난을 알아차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설령 알아차렸다고 한들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형편을 멀리서, 그것도 날이 저문 상황에서 보고 계신 분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이해해 주지 못하고 도와줄 수 없는 고난이요 고통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이미 보고 듣고 알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성경에 귀를 기울여보면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 애굽의 압제 속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들을 위해 빛나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 그리고 풍랑을 만나 절망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 낮이 밝기를 기다리지도,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지도 않으시고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시지도 않으시고 직접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찾아오신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3.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에서 건지십니다.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베드로, 그가 비록 보잘 것 없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즉시 손을 내밀러 베드로를 붙잡으셨고 사망의 소용돌이에서 그를 건져내셨습니다. 베드로를 붙들었던 예수님의 손. 그 손은 우리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고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는 치유의 손입니다. 그 손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의 짐을 벗겨서 들어주시는 위로의 손입니다. 그 손은 모든 고난 가운데서 우리를 끌어내시고 복락의 현장으로 이끌어 가는 축복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늘의 보좌도 버리시며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고난의 바다에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끌어내시는 예수님. 당신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십니다. “예수님, 제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예수님, 제 손을 꼭 잡고 가소서”